본문 바로가기

안지의 놀이터

신과 함께 (억울함에 대하여)





*주의* 완전 스포일러 있고요, 대체적으로 감상평 위주로 서술되었습니다.

낮에 공원에서 만난 친구들중 한명이 저녁에 영화를 보러간다고 하길래 나도나도를 연발하며 주말 밤 9시 20분에 딱 한번 상영하는 이벤트 시네마에 예매를 했다.

주호민이라는 웹툰 작가는 농담처럼 거론되는 파괴왕이라는 별명으로만 알고 있었고 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라는 사실도 상영 몇시간 전에 전해들었다. 죽음에 관한 거라는 둥 죽어서 신을 만나는 내용이라는 둥 CG가 별로라는 둥의 이야기만 듣고선 죽음에 대한 내용은 최근에 유행했던 여러 레파토리를 알고있는지라 그런 내용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추측정도만 하는 정도였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몇년전에 케이블 티비에서 잠깐 봤던 영화에서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 전투가 한창인 반쯤 무너진 건물안에서 적군한명과 아군한명이 대치를 벌이는 장면이 있었다. 아군병사가 적군병사를 위협하며 죽일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갔는데 죽음에 다다른 듯한 적군병사는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고 이에 아군병사는 적군병사를 놓아줘버린다. 도망가는척 하던 적군병사가 다시 돌아와 아군병사를 위협하며 죽이려고 하자 아군병사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상황에서 적군병사는 서서히 아군병사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는다.

원래도 전쟁이라는 테마를 좋아하지는 않는지라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데 저 씬은 인상이 너무 강했는지 몇년동안이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아마도 ‘억울함’ 정확히는 ‘억울한 죽음’ 의 표현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과 함께’ 는 김자홍(차태현분)이 죽어서 일곱개의 지옥을 지나며 심판을 받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에서는 당사자가 벌인 가장 가벼운 죄부터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데 각 지옥을 지나며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과거의 죄들이 언급되고, 전후 사정과 그에 얽힌 사실들을 밝혀내며 각 지옥의 신들이 심판을 하게 된다.

김자홍이 거쳐가는 처음 두세개의 지옥에서는 주로 본인이 저지른 죄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다가 극의 중간 정도에서 그 흐름이 바뀌게 된다. 이때 김자홍의 가족 한명이 사망하여 이승을 떠도는 원귀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후 김자홍과 어머니, 동생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다뤄진다.

김자홍의 동생 김수홍(김동욱분)의 예기치 않은 죽음과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겪은 억울함으로 인해 김수홍이 원귀가 된 사실이 밝혀진다.

김수홍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면과 원귀의 억울한 감정의 대비가 뛰어나다. 영화는 김수홍을 통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입체적인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내었는데 그 대비를 통해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혹은 안타까움을 선사했다.

시간이 지나며 배역의 무게중심이 김자홍에서 김수홍으로 이동되는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김수홍이 가진 감정의 휘몰아침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약간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극 중후반 설정을 보완하며 하드캐리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수홍의 억울한 죽음은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을 통해서는 보상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긴 후임병사를 쫓아다니다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살려준다. 게다가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자신을 생매장한 군대 선임에게도 복수를 하던 도중 그만두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갖고 있던 갈등-구체적으로 억울한 죽음-은 다른 것을 통해 해결이 되는데 우연히 목격한 지옥에서의 김자홍 심판장면을 목격하고 현몽을 통해 어머니에게 말을 걸게 된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는 김수홍이 만들었다.
김자홍이 미처 풀지 못한 어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풀리지 못한 자신의 억울함 죽음에 대해 어머니와 대화하고 용서와 이해를 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그가 갖고 있었던 억울한 감정은 소멸되게 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접했던 그 처절했던 억울한 죽음 때문에 가끔은 몸서리치며 소름돋곤 했는데 신과함께에서의 억울함이 사라지는 과정을 접하니 이전의 그것 또한 조금은 해소가 되는 느낌이다.

억울함이 어떻게 해소되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모든 경우에 맞는 해답을 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각각의 수가 너무 다르고 최악의 경우에는 해소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억울함을 야기한 원인에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소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억울함은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대화나 사건, 제 3자의 개입, 혹은 지금은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만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유치하거나 지나치게 신파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가볍게 보고 적당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재밌는 영화인듯



그외에...

그나저나 극중 김수홍이 성격이 너무 좋네. 좋다못해 어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중.

자막없이 보니까 넘나 좋은것, 게다가 요즘은 동시녹음도 잘 하는지 배우들 발음이 좋은지 먹히는 소리 없이 클리어하게 잘 들립디다.